야스쿠니신사 앞에서 기념식을 갖고 있는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
식민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고종황제라고?
지난 23일 일본의 TBS방송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즈음해 특별히 서울발 뉴스 한 꼭지를 전했다. 이 방송의 서울특파원이 사학명문인 양정고등학교의 ‘한일병합 100년 특별수업’ 현장을 찾아간 것이다. 한국 청소년들의 한일 역사 인식의 현주소를 짚어보겠다는 취지에서다. 결과는 놀라웠다. 역사교사가 한일 강제병합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와 통감부 건물 사진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충격적인 답이 나왔다. 학생들 상당수가 태연하게 ‘고종’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한일병합에 대한 기초적 사실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뉴스는 이어 한국 20∼30대 젊은 세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올해가 한일 병합 100년’이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답한 비율이 51.2%에 달했다면서 한국 젊은 세대가 과거와 달리 역사에 무관심하다고 분석했다.
도쿄에서 이 뉴스를 본 재일동포와 한국인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대한제국 황제와 식민지 침략의 원흉을 동일 인물로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뉴스를 본 뒤 요즘의 일본 상황이 자꾸 되새김질됐다. 이 뉴스가 방송되기 바로 전날(22일) 도쿄도 도시마구(豊島區) 공회소에서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와 극우세력이 정면충돌할 뻔했다. 한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 강제병합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의 일본실행위원회가 이 공회소에서 병합조약은 불법·무효임을 선언하는 ‘식민주의 청산과 평화 실현을 위한 한일시민공동선언’을 발표하려고 하자, 행사장 주변에 ‘일본국정당’ ‘일본민족청년회의’ ‘전위행동대’ 등 극우단체의 차량 십여대가 출동해 실력 저지에 들어가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일본 정치판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지난 10일 한일병합 100년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에 대해 자민당 등 보수야당들은 일제히 비판하고 있다. 마치 간 총리가 있지도 않은 침략사실을 인정이라도 한 것처럼 흥분하며 정치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침략과 수탈을 정당화하며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다. 중국이 득세하고 북한의 침략 위협이 높은 상황에서 한일 간 미래지향적 협력이 절실하더라도 우리가 일본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그런데 현재로선 ‘최악의 조합’이 연상된다. 지금은 한일 관계 개선과 과거사 반성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일본의 정치상황으로 볼 때 가까운 미래에 자민당 등 보수정권이 다시 들어설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 시점에 한국 젊은 세대의 역사 무관심과 일본 극우세력의 끈질긴 식민지 침략 합리화 노력이 맞아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양정고교의 역사교사는 TBS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대를 맞아 외국어 학습이나 경제 문제에 치우치면서 학생들이 역사를 소홀히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은 밤을 새워서라도 잊지 않으려고 하면서 정작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진실은 수능 시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등한시되고 있는 현실이다.
2010학년도 수능에서는 국사 선택자가 6만9704명으로 수능 응시자의 10.9%에 불과했다고 한다. 국사 선택자가 수능 응시자 10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돼 있는 한 국사 선택자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가해자인 일본에선 극우 역사 교과서를 통해 왜곡된 사실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꼴이다.
우리의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일본 매스컴조차 ‘조롱’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역사 무지를 ‘장려’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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