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美入亞’ 기대반 우려반
8·30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후 일본 사회에는 상반된 반응이 교차하고 있다. 자민당의 54년 통치로 형성된 ‘썪은 물’을 말끔히 씻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은 반면 ‘초보운전자’를 바라보는 듯한 불안감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 일본인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일본 사회가 예단할 수 없는 커다란 정치실험에 들어간 만큼 어쩌면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일본의 정권교체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지배 엘리트의 국가성장전략 교체 측면에서의 분석은 일본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한국에도 작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 지배엘리트의 국가전략은 ‘탈아입구(脫亞入歐)’ 노선이었다. 문자 그대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유럽 사회를 지향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국가 간 위계서열에서 영국과 독일 등 서구 국가를 최상층에 놓고 아시아를 밑에 놓는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이 같은 흐름은 2차대전 패전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후 일본 정치를 지배한 자민당은 국가의 지휘하에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 그 자금을 바탕으로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수출해 ‘서구식 선진국’에 들어간다는 메이지 이래 성장모델을 답습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서구 중에서도 미국을 ‘준거집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자민당의 노선은 ‘안보 문제는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제발전에만 매진한다’는 요시다 독트린로 집약된다. 덕분에 일본은 1980년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런 ‘탈아입미(脫亞入美)’ 노선은 1990년대 들어 벽에 부딪혔다. 미 컬럼비아대학의 제럴드 커티스 교수(정치학)는 최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1860년대 이후 일본은 서양을 따라잡아 대국으로서 인정받은 것을 기본목표로 추구해왔는데, 그 바람이 1980년대 고도성장으로 달성되면서 목표를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이때부터 자민당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전통 지배세력의 혼란이 시작됐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고도성장 엔진이 식어버렸다.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도 유럽연합(EU)을 필두로 다양한 지역공동체가 출현하면서 다극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우산’ 밑에서 2위에 안주하는 기존 전략으로는 미국의 패권이 줄어드는 만큼 자신들의 입지도 좁아지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반면 그간 한수 아래로 봤던 중국과 한국, 인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은 무섭게 성장했다. 특히 중국의 급부상은 일본의 위기를 촉진했다. 세계은행 등에 따르면 2000년에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내년에 일본을 추월하고 2020년에는 미국을 앞지를 전망이다.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민당은 기존의 ‘탈아입미’에만 집착해 아시아 경시외교를 계속했다. 1990년대 이후 중국과 한국, 대만 등과의 잦은 외교 마찰은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아시아에서 일본의 대표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G8(주요8개국) 참여에 반대하고, 유엔 사무총장 경선에서 한국에 반대표를 던진 데 이르러서는 맹목에 가까운 아집이 느껴진다.
일본 민주당의 집권은 바로 이런 낡은 전략의 교체를 의미한다. 하토야마 유키오와 오자와 이치로, 마에하라 세이지 등 현 민주당 주역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국가성장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대안을 추구했던 세력이다. 이들의 입장은 온도차는 있어도 ‘탈미입아(脫美入亞)’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프랑스식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유럽 내에서조차 영국과 독일에 밀리던 프랑스는 1993년 유럽연합(EU) 발족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42%나 증가했다. 영국이 미국의 우산에 집착한 반면 프랑스는 EU 탄생과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덕분이다. 프랑스는 현재 독일과 함께 EU를 이끄는 ‘양륜(두 바퀴)’으로 불린다.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공동체의 ‘양륜’이 되겠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다. 민주당의 시도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일본이 140년 만에 밀어닥친 새로운 세계사적 ‘도전’에 가만히 앉아서 당할 것이냐, 아니면 ‘응전’할 것이냐는 분기점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동진 도쿄특파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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